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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질병

치질수술 후기, 그리고 치질수술 재수술까지

치질수술 후기, 그리고 재수술까지

 

남들에게는 말 못할 고통, 창피하지만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한 수술 2위에 해당하고 있는 질병 바로치질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 발병하여 27살까지 고생했고 그 279월에 8년만에 수술을 하여 치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승리한다?는 말에 속아 열심히 앉아서 공부하고 입시에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고3이 되는 늦겨울 볼일을 본 후 항문부위에서 구술처럼 튀어나게 된 것을 알게되고 민망한 자세로 거울을 갖다 두고 유심히 관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크기도 굉장히 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후로 변을 보기만 하면 그 무언가가 계속 튀어 나왔으며 수험이 끝나고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를 간 후에도 저를 괴롭혔습니다. 특히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을 받으며 40km 행군을 하던 날 아침 변을 본 후 느낌이 계속 안 좋았지만 결국 행군을 시작하자마자 고통이 따르기도 하고 휴식시간에 제발 들어가길 바랐지만 들어가지 않았고 훈련 기간 내내 너무 불편하고 고통스럽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 후에 전역을했지만 계속해서 치질을 달고 살았고 시험을 준비하며 또 장기간 앉아 있다 보니 증상은 날로 심해져만 갔지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취직을 한 후에 명절을 이용해서 치질수술을 하자 결심하고 병원을 가 치핵3라는 진단을 받았고 외치핵 내치핵이 6개 정도? 젊은 사람치고는 굉장히 심하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명절연휴가 시작되는 첫째날 고향에서 수술을 받게 됩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청테이프로 엉덩이 양쪽을 쫙 벌려주어 환부가 적나라하게 보이게끔 세팅을 합니다. 그 후에 마취주사를 맞는데 마취주사를 맞았지만 이상하게도 한쪽만 마취가 안돼 환부에 직접 바늘을 찔러 넣는 고통을 맛봤습니다. 마취도 척추쪽에 맞는 척추마취는 아니였고( 척추마취는 척추 뼈 사이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어 마취시키는 방법으로 이때 생긴 척수막의 구멍으로 앉거나 서는 등 상체를 세우게 되면 척수액이 새어 나오면서 머리 쪽 척수액이 부족해져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누워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현명하고 만약에 두통이 시작됐더라도 며칠이면(5) 해결되니 두통약 찾으실 필요없고 충분히 쉬시면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타탁 거리는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제 치질수술은 시작되었습니다. 남들은 보통 10분에서 20분이면 된다는데 저는 체감상 사십분은 진행한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땅기고 지지고 하는 등 수술이 끝났고 커다란 솜뭉태기를 제 항문속에 넣었습니다. 이때 느낌은 굉장히 불편하고 불쾌하고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하반신이 마취되어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기에 수술대에서 간호사 분들 3명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굴러 떨어졌고 마찬가지로 휠체어에서 병실 침실로 올라갈때도 굴러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한시간 두시간이 흐르자 여유로웠던 처음과는 다르게..처음에는 생각보다 치질수술 별거 아니구나 사람들 괜히 엄살이였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는 굉장히 오만한 생각으로 슬슬 마취가 풀리니 입에서 자연스레 신음소리가 느낌은 불로 서서히 지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굉장히 아팠습니다. 살면서 고문을 당하거나 큰 사고를 당한적도 없으며 손가락 중지 하나 골절당한게 전부였지만 그 어떤 고통보다 아팠습니다. 그때 후회를 하며 온갖 고통을 잊기 위해 별의별 생각을 다해봤지만 때늦은 후회였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끙끙앓고 시간이 지나니 소변이 마려웠습니다. 하지만 마취된 상태였기 때문에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으며 소변을 자기 힘으로 보지 못하면 성기에 주사바늘을 꼽는 참사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안간힘을 써서 결국에는 소변을 봤습니다. 물론 그 과정사이에는 허탕을쳐서 아픈 몸을 괴로운 몸을 이끌고 몇 번이나 병실과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도 했었습니다.

 

내용이 길어져 다음편에서 이어 쓰도록 하겠습니다.